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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생각하며] 마법의 지팡이

작년부터 고춧가루 만드는 재미에 빠졌다. 전에는 고춧가루는 물론 멸치, 미역, 다시마 등을 한국에서 가져다 먹었다. 내가 살았던 미국 시골은 탄광으로 알려진 척박한 곳이었다. 한국 식품점은 물론, 변변한 쇼핑몰도 없었다. 내 옷, 아들 옷, 남편 옷이 색깔별로 들어있는 상자가 절기마다 도착했다. 세관에서 비즈니스라고 오인했는지, 세금 딱지가 붙어서 오기도 했다.     아들이 한 살 무렵에 살고 있었던 웨스트버지니아는아팔라치안 산맥이 있는 동네다. 내가 살던 아파트는 언덕 위에 있었다. 눈썰매를 타듯 브레이크를 밟으며 언덕길을 내려오면 평지에 대학 건물 파킹장이 있다. 그 옆에 잡풀이 자라는 공터에 필리핀 가게가 있었다. 동양 학생들은 아쉬운 대로 두부, 숙주 같은 것을 사곤 했고 주인아줌마의 수다스러운 웃음을 덤으로 얹어 갔다. 먼지가 풀풀 날리는 빈약한 선반에는 건조물과 통조림이 듬성듬성 있었다. 아들 돌을 차릴만한 식재료가 있을 리가 없었다. 한국에서 한 보따리 물건이 또 왔다. 버섯, 나물, 해삼, 생선, 조개 말린 것들이 왔다.     내일이 아들 돌이다. 학생 부부들을 손님으로 청해 놓았다. 전날 밤에 나물과 버섯을 종류별로 한 움큼 물에 풍덩 담갔다. 아침에 부엌에 나가 보니 이게 웬일, 내 눈은 대야만큼 커졌다. 그것들은 하마처럼 불어서 부엌 곳곳에서 대야 밖으로 넘치고 있었다. 흐물거리고 있는 나물과 버섯을 일단 없애야 했다. 손님들이 돌아갈 때 사정해 가며, 한 봉지씩 안겼던 기억이 난다. 건조식품에 대한 감이 전혀 없었던 애송이 시절이다.     지금은 안다. 그 물건들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이곳의 즐비한 한국마켓에 나가도 구할 수 없는 것이라는 것을. 경동시장까지 발품을 팔고 노심초사 골라서 비싼 운임으로 부친 것이라는 것을. 어디 먹거리뿐인가. 그 시절의 나는 한국을 다녀오면 다른 사람이 되어서 돌아오곤 했다. 탱글한 파마에 윤기 나는 피부에 유행하는 옷을 입고 미국에 돌아왔다. “이제야 제 모습이 나오는구나”라며 읊조리는 그분의목소리를 뒤로하고 비행기에 올랐다.     어머니의 마법 지팡이는 길어야 석 달이면 효력이 다했다. 파마는 늘어지고 피부는 거칠해지고 옷은 후줄근해졌다. 담가주신 김치는 떨어졌고, 챙겨주신 밑반찬은 바닥이 보였다. 그분의 지팡이도 미국 땅까지는 세력을 뻗치지 못했다. 나의 일상을 스스로 해결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봄이면 나는 고추를 심는다. 안 매운 고추, 아삭이 고추를 심어도 어느 정도 자라면 매워서 먹을 수가 없다. 아기 고추 몇 개를 따 먹다가, 가을볕에 고추가 빨개지도록 그냥 두었다. 깊고 그윽한 햇볕을 받아서 대롱처럼 매달린 고추를 줄기에서 낚아챈다. 반을 갈라서 건조기에 밤새도록 말린다. 집안에 알싸하고 매캐한 냄새가 퍼진다. 가을비가 그치기를 기다렸다가 오그라든 고추를 다시 한번 해를 보게 한다. 이제 가루가 될 준비를 마쳤다.     마법 지팡이로 나를 ‘팡’ 건드려 주던 분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한국에서 보따리가 오지 않아도 그럭저럭 해결되고 있다. 시월 어느 따뜻한 날을 골라서, 햇고춧가루로 김장을 해야겠다. 김미연 / 수필가살며 생각하며 지팡이 마법 마법 지팡이 아기 고추 한국 식품점

2022-10-11

[삶의 뜨락에서] 자격지심

누구나 자존심은 있습니다. 그리고 손상당한 자존심 때문에 화를 내고 우울해 하고 불행해 합니다. 그러나 자존심 때문에 자기의 일생을 망치는 사람도 있습니다. 자존심은 내가 싸운다고 지켜지는 것도 아니고 오만하게 군다고 지켜지는 것도 아닙니다.     오래전 시카고에서 미팅이 있어 호텔에 며칠 묶게 되었습니다. 공항에서 호텔에 내리니 아주 점잖게 생긴 분이 가방을 로비로 옮겨주었습니다. 나는 미팅이 끝나면 로비를 지나야 하는 일이 많아 그 사람을 자주 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그분이 이 호텔의 지배인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은퇴하고 호텔에서 가방을 들어주는 사람으로 일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손님들에게 친절하면서도 위엄이 있게 일하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몇 달러를 집어 주어도 그냥 고맙다며 받았습니다. 나는 자존심은 저렇게 세우는 것이로구나 하고 생각을 했습니다.     아주 오래전에 맨해튼 식당의 여종업원이 있었습니다. 식당에서 일하니 까다로운 사람도 많고 또 예의 없는 손님도 많이 겪게 됩니다. 그러나 이 여인은 모든 것을 감수하고 미국에서 자리를 잡고자 노력했습니다. 그런데 남편이 문제였습니다. 남편은 한국의 S 대학 졸업생인데 미국에 오니 영어도 안 되고 자기 눈높이의 직업을 구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니 집에만 있게 되고 가사를 돌보아야 하고 애들을 돌봐야 하고 늦게 오는 부인에게 의처증만 생겼습니다. 결국은 부인과 이혼하고 혼자 한국으로 돌아갔다는 소문이었습니다.     저도 한국에서 전공의를 하고 외과 전문의로 외과 과장까지 하다가 미국으로 왔습니다. 처음 미국에 와서 인턴을 했습니다. 먼저 미국에 온 후배들의 밑에서 일을 하면서 자존심을 상하는 일이 무척 많았습니다. 그러다가 욥기를 읽었습니다. 욥 같은 부자가 하루아침에 모든 것을 잃고 돗자리에 앉아 깨진 기왓장으로 헌데를 긁고 있었다는데 내가 이정도야 아무것도 아니다. 작은 보따리를 매고 피난길에 오르던 그 마음으로 살자고 생각하니 일을 열심히 하게 되고 일을 열심히 하니 교수님들의 사랑을 받게 되었습니다.     오하이오에 한국 식품점을 하는 분이 있었습니다. 그 부인은 친절하고 손님 대접을 잘하지만 남자는 무뚝뚝하고 불친절하기 끝이 없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거기로 가지 않고 좀 멀기는 하지만 다른 집으로 가는 사람이 많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가끔 친구들이 골프를 치자고 합니다. 나는 골프를 좋아하지 않지만 연습장에 나가서 채를 휘두르는 연습을 하곤 합니다. 한번 친구들이 보고는 “야 너 그만하면 잘 친다. 이제 좀 자주 치자”라고 친구들이 끼워주겠다고 합니다. 그런데 골프 클럽의 그립을 바꾸어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오늘 오전 오다가다 간판을 보아둔 골프점에 골프채를 가지고 들어갔습니다. 마침 부인이 진열장 정리를 하는 모양이었습니다. 그래서 혹시 여기서 골프채 그립을 바꿔줄 수 있냐고 물었습니다. 그분은 나를 보더니 무엇이 화가 났는지 “우리는 그런 거 안 해요” 하고는 돌아서 무어라고 중얼거리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무슨 잘못을 저지른 것 같아 무안해서 나왔습니다. ‘우리는 그런 거는 안 해요’라면 골프상점에서 무얼 하나요. “내가 여기서 진열장을 정리하고 있으니 내가 이런 거나 하고 살 사람 같아요”하고 쏘아붙이는 것입니까. 그러면 손님은 그런 소리나 들으려 당신 가게에 오라는 것입니까. 이용해 / 수필가삶의 뜨락에서 자격지심 자존심 때문 한국 식품점 오래전 시카고

2022-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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